온세계가 경제가 나빠지면서 실업자를 양산하며 사회에 새로이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깊은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뾰족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나온 대책이 그린일자리사업, 기존의 일자리나누기, 공공부문 청년인턴 채용 등 일시적이거나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대통령이 과거 그의 커뮤니티 오거나이저의 경험을 살려 자원봉사자 중심의 지역경제살리기, 치안대책, 청소년선도, 슬럼재개발 사업 등을 전문적인 일자리로 바꿔 3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의 경제사회환경에 맞추어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논하고자 한다.
1. 새로운 노동·Alternative한 노동
가능성으로서 「새로운 노동방식」은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 재택근무나 플렉스타임 등 오피스에서의 새로운 근무형태로부터 work-sharing, workers-collective, SOHO나 정년귀농, voluntary 활동이나 NPO에의 「취직」 등 뿐만 아니라 창작활동이나 학술연구활동, 순수한 사색이나 종교활동, 임금노동을 부정하며 국가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바로 그것을 극복하자고 하는 실천활동까지 협의의 경제활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노동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Hannah Arendt는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력으로서 노동(labor)·작업(work)·활동(action)을 들었다. 이 세가지의 활동력은 각각,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소비재의 생산(노동), 유용성과 내구성을 가진 것, 즉 소비와 대비되는 도구나 기구, 미적 영속성을 가진 예술작품 등의 인공물의 제작, 담화 즉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나 영웅적 개인의 위업을 전형으로 하는 것이다.
Arendt가 말하는 활동까지 시야에 넣으면, 새로운 노동방식에의 문제란 대충 모든 인간활동, 일반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 등으로 불리는 것도 포함시킨,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의 현상 바로 그것에의 문제와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광범위한 사회적 활동의 제 유형 중, 인간이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노동」의 새로운 형태다. 그것은 현상으로서는 특히 언급할 만한 신기성은 없고, 그 의식면에 있어서도 결단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정한 현실성을 가지고 동시에 자기의 원리에 근거해서 자기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의 평소의 계속을 통해서 종래에 없던 인적 결합의 형태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을 야기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새로운 노동방식,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결실되는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 바로 그것에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alternative한 노동방식 혹은 alternative한 사회적 관계에의 경험의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2.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 경제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 지속적 노동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다른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맺어 가는 노동(Community-Based Work)을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노인요양서비스나 육아 등의 대인서비스를 비롯해 쓰레기처리나 생활환경·경관형성이라는 종래부터 행정서비스로서 공급되어 온 업무는 물론, 생활도로 및 그 밖의 공공재산의 형성·공급, 일상적인 편리서비스로부터 문화적인 활동까지 포함한 노동.
(예를 들면 아일랜드에서는 시인은 「Language Activist」라고 불리며 커뮤니티센터에서 가르치거나 문화 adviser로서 지역사회에 관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영위가 「노동」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즉 개인의 생계를 해결하고 동시에 사회적인 가치로서 유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유지하는 시스템 -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 경제(Community-Based Economy) - 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동체의 규범(마을의 규정)이나 자유로운 주체에 의한 계약과 경쟁의 원리에 근거하여 경제활동을 규정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윤리로서 「hospitality의 윤리」라든가 「공생의 작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래의 윤리 - 선악에 관련된 공동체적 규범으로서의 타율적인 도덕과 구별되는, 「자유로워라」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시에 목적(자유)으로서 취급하라」라는 Kant적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의 윤리 - 에 근거한 시스템이 아니면 안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가능성으로서의 윤리가 현실에서 생기게 하는 모태, 혹은 경험의 능력을 배양하는 장으로서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다른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맺게 하는 신뢰 혹은 공생의 경제시스템.
3. 중간영역으로서의 커뮤니티
그러면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지역에 대하여 공동체, 추상적인 시장에 대하여 구체적인 생활세계, 두레라는 전통적인 인적결합의 구조의 현대판, 그 밖의 이미지는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원리적으로 시간이나 공간의 한정을 받지 않는 이론적인 지평에 커뮤니티를 자리매김한다.
우선 globalism과 localism의 대립에서 전형적인 「일반-특수」의 수평축을 긋고, 이어서 이것에 「보편-개별」의 축을 직접 주고 받게 한다. 그렇다면 일반과 특수한 사이에 있는 중간영역 - 「Glocal」한 장이라고 해도 좋고, 일반적인 「계약」 (contract)과 특수한 「제도」(institution)가 크로스하는 장, 혹은 Hume적인 「묵계」(convention)가 창발하는 장이라 해도 좋은 - 으로부터 수직방향으로 보편과 개별로 향하는 두 벡터가 생긴다. 커뮤니티가 부화되는 장은 거기다.
Virtual한 것이든 Actual한 것이든, 현상으로서의 커뮤니티는 냉정한 Paternalism이나 규정에 지배되는 촌락공동체(제도로 규율된 「호혜경제시스템」)과 비인격적 결합체로서 설계된 대규모 기업조직 혹은 사리사욕에 입각한 냉혹무자비한 시장(자유계약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시스템」)과의 중간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촌락이나 기업조직·시장은 머리로 생각되는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사회가 초래하는 경험은 좀 더 두터움 혹은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 깊이의 차원을 표현하는 것이 사실은 「보편-개별」의 축이며, 보통 그것은 이념이나 이상, 허위의식이 아니라 견해로서의 이데올로기의 세계, 야유적인 뉘앙스로는 신학적 세계 등으로 때로 불리는 영역을 드러내고 있다.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 여러 활동이 「노동」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깊이의 차원에 commit하고 거기에서 생계유지의 原資·근거로 되는 가치를, 그것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가치나 호환성을 가지는 특수한 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혹은 공공적이고 개별적 혹은 「인간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 경제란 따라서 호혜경제시스템과 시장경제시스템과의 중간영역에서 양자를 매개하면서,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인 가치의 생산·유통·소비·저장의 프로세스를 통치하는 alternative한 사회적·문화적인 경제시스템이다.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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